필수품목 규제, 한국형 프랜차이즈 산업 몰이해 때문
필수품목 규제, 한국형 프랜차이즈 산업 몰이해 때문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8.01.1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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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점주가 직접 필수품목 규제 반기 들어

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질 중 하나는 장소·시간을 불문한 서비스의 동질성이다. 외식 프랜차이즈는 전국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같은 수준의 맛과 서비스가 돼야 한다. 반면 이는 가맹본부-점주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발생한 ‘갑질 논란’을 보면 대부분 필수품목과 관련한 분쟁이었다.

가맹본부는 서비스 동질성이라는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점주는 최소화해 줄 것을 요구하며 갈등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점주의 입장을 반영해 필수품목 규제를 강화하면서 업계에서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말 공정위는 외식업종 50개 가맹본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구입요구품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가맹본부의 94%가 구입요구품목(필수품목)의 유통마진을 통해 일부라도 가맹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2%는 유통마진으로만 가맹금 전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 필수품목 축소 ‘압박’

공정위는 유통마진을 ‘차액가맹금’으로 표현하며 물류 수익을 통해 가맹금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류 수익을 변형된 가맹금으로 본 것이다. 공정위의 이같은 시각은 유통마진을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정상적인 행위가 아닌 물류 ‘갑을관계’로 묶고 있다.

특히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서 브랜드 동일성이나 상품의 동질성 유지와는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품목들도 상당수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예로 주방용품(행주, 타올, 세제, 손소독제 등), 사무용품(노트, 포스 용지 등), 1회용품(포크, 스푼, 은박도시락, 종이컵, 빨대 등) 등을 들었다. 가맹본부의 이른바 ‘갑질’을 부각시킨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같은 품목은 해당 가맹본부가 아니더라도 마트·홈쇼핑 등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며 “구입을 강제하는 행위는 구속조건부 거래행위(거래상대방 구속)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이번 필수품목 관련 조사·발표는 갑질 프레임을 적용시켜 가맹본부의 정상적인 제공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공정위의 이같은 기조는 업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FC협 필수품목 축소 ‘백기’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공정위와 사회적 여론 등에 떠밀려 지난해 10월 ‘자정실천안’을 발표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자정실천안에서 유통 폭리를 근절하겠다며 필수품목 축소 방침을 밝혔다.

▲ 지난해 10월 27일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자정실천안 발표장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부터), 최영홍 프랜차이즈 혁신위원장, 박기영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 김용만 김가네 회장이 화합의 뜻으로 손을 잡고 있다. 사진=이원배 기자 lwb21@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브랜드 동일성·품질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품목만 필수품목으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합리적인 필수품목 지정 기준 등을 담은 ‘모범규준 실천서약’에 대한 가맹본부의 동참을 독려하기로 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필수품목과 관련한 방침은 공정위의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셈이다. 그럼에도 김상조 위원장은 자정실천안 발표 당시 필수품목 지정 최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요건 설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며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를 압박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필수품목 관련 규제는 동일·균질한 품질의 서비스라는 프랜차이즈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갑질논란을 역이용한 가맹점주의 무분별한 사입 품목 사용으로 브랜드 이미지 하락도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한 중견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근간은 균질한 제품의 공급이다”라며 “불필요한 품목 강매는 당연히 근절돼야 하지만 동일한 제품의 사용은 필수적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정위의 필수품목 규제 압박은 정상적인 제품 공급도 위축시킬 수 있어 브랜드 차별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며 “하나의 잣대를 대기보다 사업 성격에 맞는 차별성 인정 등 다양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마로강정 점주협 “강매행위 없었다”

최근의 갑질 여론에 편승한 공정위의 부실하고 모호한 판단도 논란이다. 공정위의 모호한 판단이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최근 공정위가 마세다린의 ‘가마로강정’이 가맹점들을 대상으로 필수품목 구매를 강요했다고 과징금을 부여하자 가마로강정 가맹점협의회가 ‘갑질’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공정위의 필수품목 기준과 잣대의 일관성을 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최용우 가마로강정 점주협의체 대표는 지난달 말 호소문을 내고 본사의 강매 행위는 절대 없었으며 일부 언론이 보도한 필수품목 구매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가맹점 오픈 지연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공정위의 발표를 정면 반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방적 필수품목 규제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주영 숭실대 교수(벤처중소기업학과)는 지난해 2월 발표한 ‘프랜차이즈 구입강제에 관한 탐색적 연구-연계판매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한국 대부분의 가맹본부는 연계판매를 통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어 필수품목 외의 구입강제, 시장가보다 높은 공급가격 등으로 가맹점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또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칫 가맹본부와 가맹점간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돼 프랜차이즈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시켜 가맹점의 수익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로열티 정착 산 넘어 산

박 교수는 “가맹본부의 자율적인 개선 노력이 중요하고 가맹점과의 거래 투명성 제고 및 가맹점에게 품질유지 필요성에 대한 설득 노력, 그리고 로열티 방식의 수익구조 전환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의 주장대로 로열티 제도가 유통마진의 유력한 대안으로 강조되고 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도 로열티 제도 정착에 사활을 걸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취임 후 여러 차례 로열티 제도 정착을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맹본부 스스로 로열티 방식으로 전환토록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간 공정거래협약 체결을 적극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 현실상 로열티 제도 정착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가맹점주가 로열티 제도에 대한 이해가 낮고 일종의 세금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많은 가맹본부가 ‘무가맹금’을 창업 유치에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착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로열티 제도가 장기적으로 맞다고 본다”면서도 “업계 현실상 제도 정착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정착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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