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내년 1월부터 모든 농수산물에 ‘생산연도’ 또는 ‘생산연월일’을 표기하도록 한 고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자칫하다가는 농수산물 유통질서에 대혼란은 물론이고 생산자들에게는 감당키 어려운 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번 식약처 고시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을 넘어 현장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조치이다.
식약처 고시에 따르려면 수산물의 경우 생산연월일을 표기하기 위해 생선 한 마리마다 잡은 일자별로 구분 보관해야 한다. 장기간 출어하는 어선에서 잡은 날짜별로 보관하려니 선박 내 냉장창고를 구분설치해야 한다.
어선 개조를 위해 추가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작은 어선의 경우 공간이 좁을 수도 있다. 또 어획량이 넘치면 보관이 불가능할 수도 있고 어획량이 적으면 구획마다 텅 빈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일자별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생선에 어획한 날짜를 찍을 수 없으니 포장도 별도로 해야 한다.
농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해 버려지는 농산물이 부지기수인데 생산한 날짜별로 분류하고 포장을 해 생산연월일 스티커를 부치라니 가당치 않다.
농산물의 특성을 무시한 채 가공식품의 잣대로 생산연월일을 규제하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행정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고시를 실행하려면 농수산물 모두 일일이 별도 포장할 스티로폼박스며 스티커 등 추가 포장비용과 함께 인건비 등 원가상승 요인이 될 수 있고 친환경과도 크게 역행하는 일이다.
식약처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안전관리를 이유로 이번 고시 변경을 하게 되었다’는 변명을 하고 있지만 궁색하기 그지없다.
최근 유통업계는 소비자들에게 초 신선식품을 배송하기 위한 새벽배송, 총알배송, 즉시배송 등 배송 경쟁이 치열하다. 또 농수산물의 신선도는 소비자의 식별로도 가능하기에 쓸데없는 과잉규제만 만들어낸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식약처가 이번 고시를 준비하며 농수산물 생산자단체나 유통업계와 충분한 협의는커녕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도 어떤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