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김치 세계화 막는 지리적표시제
한국김치 세계화 막는 지리적표시제
  • 박현군 기자
  • 승인 2021.09.0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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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김치 재료 100% 국내산 불가… 전통식품인증제·지리적표시제 이원화 운용 필요
한국산 김치를 생산하고 있는 풀무원 글로벌김치공장 내부 모습. 사진=풀무원 제공
한국산 김치를 생산하고 있는 풀무원 글로벌김치공장 내부 모습. 사진=풀무원 제공

대한민국의 전통식품 김치는 글로벌 명품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CJ제일제당·대상·풀무원 등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해외로 수출하는 김치 중 30% 이상이 현지인들에게 판매되고 있으며 판매 비중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에 정부는 ‘한국김치’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지리적표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오히려 김치 세계화에 발목을 잡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각사 제공

 

김치 지리적표시제는 지난해 2월 11일 공포됐고 같은 해 8월 1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중국 등 해외 기업들이 자국에서 만든 저품질 김치에 ‘한국’ 혹은 ‘KOREA’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세계 식품시장에서 ‘명품 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김치의 브랜드를 지키고 한국 김치산업의 글로벌화를 돕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국내 김치업체들은 수출제품에 ‘한국’·‘대한민국’·‘KOREA’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지리적표시제란 “특정지역에서 지리적 특성을 가진 농수산물 또는 농수산가공품을 생산하거나 제조·가공하는 업체에게 해당 지명을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농수산물 품질관리법 제32조)”을 말한다. 이천에서 생산된 쌀에만 ‘이천쌀’이라는 상호를 써야 하듯 말이다.

농산물이 아닌 가공식품일 경우에는 “지리적표시 대상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주원료로 대상지역에 위치한 생산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농수산물 품질관리법 시행령 제15조)”을 말한다. 전라남도 영광군에 있는 업체가 영광군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만 ‘영광굴비’라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가공식품의 지리적표시를 김치에 적용할 경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농수산물 품질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김치에 ‘한국’·’대한민국‘·‘KOREA’ 등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주원료’가 한국산 농산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주원료’의 기준에 대해 농수산물 품질관리법령 어디에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김치산업진흥법은 ‘제2조(정의)의 2’에서 “주원료란 제조하려는 김치의 제품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원료(원료가 여러 종류인 경우에는 최종 제품에 혼합된 비율이 높은 순서로 3개 이내의 원료)를 말한다”라고 규정했다.

김치업계에 따르면 해외로 수출하는 제품의 대부분이 배추김치이며 배추김치에 가장 많이 투입되는 원료는 배추·무·고춧가루 순이다. 이 외에도 마늘, 소금, 젓갈 등 다양한 재료가 투입된다. 문제는 김치산업에서 사용하는 배추·무·고춧가루·마늘 등 원재료 수요를 국내 농가가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실제 통계청의 농작물 생산조사에 따르면 국내 고추농가에서 생산된 건고추는 2015년 9만7697t에서 감소추세를 보이며 2019년에는 7만8437t 생산에 그쳤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및식품첨가물생산실적’에 따르면 김치 생산량은 2015년 43만7944t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2019년에는 47만1698t을 기록했다. 

주요 김치업체 관계자 A씨는 “고춧가루는 김치·고추장 등 국내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원료 수급량이 고추농가의 총 생산량을 넘어선지 오래이며 배추·무 등도 때때로 폭염·폭우·한파 등의 영향으로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가 많다”고 밝힌 후 “이같은 경우 부족한 부분을 중국 등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수출물량을 맞출 수 없다”고 밝혔다. 

김치업체, 김치 주원료 개념 현실화 필요
이 때문에 CJ제일제당·대상·풀무원 등 김치 수출업체들은 차라리 ‘한국’ 혹은 ‘KOREA’라는 브랜드를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대형 김치업체 관계자 B씨는 “농가·김치업계·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고추 등 주 원료의 자급율 100%를 일시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일정 품질 이상의 원료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브랜드에서 설정한 맛품질을 유지해야 하는 수출기업에게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김치’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가는 김치에 맛품질과 가격 정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면 오히려 악영향이 클 것”이라며 “차라리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하는 게 이득”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김치업계에서는 ‘김치의 지리적표시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김치의 주원료’의 개념을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김치업계 관계자 C씨는 “‘김치’에 대해 지리적표시 심사를 할 때에는 수급애로 문제를 고려해 주 원료의 일정비율 이상(예:배추의 90%·고춧가루의 70%)을 국산재료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거나, 주원료의 일정비율(예:상위 5개 중 3개·8개 중 4개)을 100% 국산재료로 사용하도록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김치산업진흥법과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치 수출업체들은 지리적표시제 완화를 통해 ‘한국김치’라는 명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한국 김치산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치업계 관계자 B씨는 “4~5년 전부터 김치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덩달아 ‘한국산 김치’는 프리미엄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국가제도로서의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지리적표시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김치산업의 위상을 한껏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치제품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려면 100% 국산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중소 김치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에서 국산 재료를 사용해 우리의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한국김치’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며 “‘한국김치’의 표시 기준 완화는 한국김치에 대한 명품의 격을 스스로 낮추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 표시제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100% 국산 재료만을 고집해 생산된 김치를 호텔·고급 레스토랑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이들은 김치산업의 경제성·경쟁력 측면 보다는 대한민국 전통 김치문화의 ‘품격’을 강조한다. 또 고추·배추농가에서도 김치 지리적표시제 완화 방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고추농사를 하고 있는 D씨는 “김치에만 지리적 표시제를 완화하면 이를 빌미로 다른 제품에도 예외조항이 생기고 결국 이 제도는 무력해질 것”이라며 “‘한국김치’라고 당당하게 말하려면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100% 국산이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유럽처럼 지리적표시제 이원화 운용해야
이와 관련 조상우 풀무원 상무는 “한국김치는 한국산 식재료를 갖고 우리의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김치 지리적표시제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표시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 모두 틀리지 않았다”며 “이에 유럽의 경우처럼 지리적표시를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럽의 지리적표시제도는 크게 PDO(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원산지명칭보호)와 PGI (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 지리적표시보호) 제도로 나뉘어져 있다. PDO는 해당지역의 농수산물을 갖고 그 지역에 소재한 공장에서 생산·가공·제조한 제품들에 붙여진다. 반면 PGI는 원재료로 투입되는 농수산물이 해당지역에서 재배했거나 혹은 타지역 농산물이라도 해당 지역에 소재한 공장에서 생산·가공한 식품에 부여된다.

이처럼 ‘한국산 전통 명품김치’에 대한 인증과 ‘한국에서 제조된 한국김치’에 대한 인증을 이원화 시켜서 운용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대상·풀무원 등 기업들의 수출김치에는 유럽식 PGI제도처럼 완화된 지리적표시 인증을 적용하고 한국 전통 김치로서의 고품격 프리미엄 제품을 강조하고 싶다면 전통식품인증을 받는 방안을 제안했다.

관계 당국도 김치 지리적표시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임영조 농식품부 식품산업진흥과 과장은 “현행 제도 안에서도 김치 지리적표시제 도입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김치 지리적표시제에 대한 여러 주장·의견들을 모아서 현행 제도 안에서 작동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 과장은 “현행 지리적표시제 제도를 김치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지리적표시제 심의위원 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한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김치와 같은 가공식품은 모든 원재료를 전부 국산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체 투입 원료의 국산화율 퍼센트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주재료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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