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의 어원│왜 우리 음식 이름이 한자에서 와야 하나
감자탕의 어원│왜 우리 음식 이름이 한자에서 와야 하나
  • 권대영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농수산학부장
  • 승인 2021.10.1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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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음식 이야기기가 많이 나오는데 심심치 않게 어원이나 역사에 관련해서 사실이 아닌 것이 참 많다.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살아온 조상들의 정신이나 혼을 배우는 것보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의 한마디에 의지하려는 무리, 특히 방송작가들의 무지나 잘못된 편향 때문이다. 

몇 달 전 모 방송의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어느 외국 군인이 감자탕을 좋아한다면서 일부 감자탕에는 감자가 없음에도 감자탕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고기 부위 일부를 한자로 감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버젓이 말했다.

그것도 외국인이 말이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우리 음식 이름이 중국 한자에서 왔다고 믿는 사람들이나, 우리 음식 이름이 한자를 들이대고 뭐라고 설명하면 진짜인 줄 쉽게 믿는 작가가 많기 때문에 그런 방송이 걸러지지 않고 쉽게 나갔을 것이다. 한자를 안다고 해서 꼭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모든 사전을 동원해도 감자라는 한자어가 돼지 뼈 부위를 지칭한다는 것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뼈 어느 부위를 감자라고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돼지고기 부위 이름이 삽겹살, 목살, 갈매기살, 앞다리살 등 다 우리말로 돼있는데 왜 하필이면 뼈 부위를 감자라는 한자로 했을까? 감자라는 부위는 일반에게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정확하게는 있지도 않다. 감자탕이라는 이름은 한자를 잘 모르는 감자탕을 만들고 팔고 먹는 사람에 의해서 붙여진 것이다. 과연 감자탕을 파는 사람 중 감자라는 돼지고기 부위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감자탕을 먹는 사람이 감자라는 한자를 알았을까?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음식 이름의 뿌리를 이야기할 것 같으면 중국 한자나 일본말을 들이대고 배운 척하면서 이야기하면 대단한 줄로 알고 이들의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서 우리 음식 이름의 뿌리가 잘못된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감자탕과 닭도리탕이 대표적으로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음식인데도 이름이 한자나 일본 말에서 왔다고 지껄여진 것이다. 그리고 방송계에서 검증도 하지 않고 진짜인 줄 알고 방송을 하고 있다(닭도리탕의 뿌리에 대해서는 2016년 5월 30일 본지에서 이야기함). 

우리나라 음식이 대대로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그 딸에게로 내려오다가 지금과 같이 외식문화로 발달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 이후다. 전쟁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 어머니들, 특히 북에서 내려온 분들이 돈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자기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을 만들어 장에다 내서 팔거나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팔기 시작한 것이 외식문화가 발달한 계기다. 떡볶이, 순대, 설렁탕, 냉면, 닭도리탕 등의 역사가 여기에 해당된다. 

1970년대 중반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재수할 때 광화문, 종로에는 대학입시 단과반이나 종합반이 있었다. 그때 돈 없는 재수생이 맛있게 먹었던 것이 감자탕이다. 잘 익은 김치에 주로 감자를 넣고 끓인 것에 밥 한 숟가락 먹으면  배가 채워졌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아주 비싼 돼지 살코기는 아니더라도 뼈를 조금이라도 넣고 끓인 감자탕이면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이 감자탕이다. 당시에 감자탕에는 값싼 감자가 주였고 비싼 돼지고기 뼈는 적었다. 주로 감자가 많이 나는 여름철에 즐겨 먹었고 겨울이나 봄철에는 쉽게 먹을 수 없었다.

70년대에는 삼겹살과 같이 돼지고기를 집이나 가게에서 먹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80년대에 들어가서야 보편화 됐다. 이 시점에 돼지고기 뼈도 상대적으로 값이 싸지면서 감자탕에 돼지고기 뼈가 주로 들어가고 어느 식당에는 감자탕에 들어가는 고기뼈에 고기 살점도 조금 들어가기 시작했다.

감자는 철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비싸지고 겨울에는 구하기 어려웠다. 어느 집에는 감자탕에 감자가 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돼지고기가 수입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일부 감자탕집에서 감자를 아예 넣지 않고 여전히 감자탕이란 이름으로 팔고 있었다. 원래 감자탕에 감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자에서 우리 음식의 역사를 말하려는 한자 사대주의자가 우리 감자탕의 역사와 이름을 철저하게 훼손시켜 버린 것이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이렇게 왜곡돼버리면 우리 어머니의 삶과 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조상들의 지혜와 문화가 깡그리 망가지는 것이다. 

다시는 우리 음식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폄하되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한자 사대주의자들에게 우리 음식 역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 음식의 뿌리를 알아본다고 한자부터 뒤지는 발상은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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