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탈리아 맛에 빠졌다 ‘생면 파스타’
진짜 이탈리아 맛에 빠졌다 ‘생면 파스타’
  • 이지혜 기자 wisdom@, 김종훈 기자
  • 승인 2022.06.16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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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들은 식재료비는 상승하지만 밀도 높은 파스타 면의 맛을 선호해 달걀 노른자와 밀가루, 물만으로 반죽을 해 생명 파스타를 만든다.사진=박건하
셰프들은 식재료비는 상승하지만 밀도 높은 파스타 면의 맛을 선호해 달걀 노른자와 밀가루, 물만으로 반죽을 해 생명 파스타를 만든다. 사진=박건하 실장

파스타가 진화했다. 주방에서 시간과 노동을 기꺼이 들여 자가제면한 생면 파스타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늘고 있다. 셰프들의 손끝에서 빚어진, 이탈리아 맛을 그대로 재현한 생면 파스타의 쫄깃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참고도서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권은중》

 

영국의 유명 소설가인 줄리안 반스(Julian Barnes)는 그의 에세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에서 생면 파스타를 거론한다. 생면 파스타와 건면 파스타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어느 요리사의 말에 줄리안 반스는 그간 집에서 뻘뻘 거리며 써 온 파스타면 기계를 치워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파스타의 고향인 이탈리아인들이 들으면 혀를 찰 이야기다. 실제 북부 이탈리아의 모든 식당은 생면 파스타만 판매한다.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의 저자이자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씨는 생면 파스타의 성지인 이탈리아 볼로냐를 소개하며 이곳에서 생면이 특히 발달한 까닭은 넓은 평야를 가진 자연환경 덕택이라 설명한다.

대륙성 기후와 목축업이 발달한 볼로냐 지역에서 재배되는 연질밀에 달걀 노른자를 넣어 만든 생면을 주식으로 섭취한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 남부는 아랍인들과 교류를 했던 중세시대부터 건면 제조법이 전파돼 그 방법을 오늘날까지 고수하고 있다.  

볼로냐인들이 먹는 생면 파스타 중 ‘탈리아텔레’라는 것이 있는데 이 이름 또한 최근 우리의 미식 트렌드 중심에 선 생면 파스타의 식감과 연관이 깊다. 탈리아는 우리말로 ‘자르다’라는 뜻의 동사 탈리에레에서 왔는데 우리말과도 비슷한 단어가 바로 칼과 국수의 조합인 ‘칼국수’다. 이탈리아의 손칼국수가 바로 생면 파스타이니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칼국수를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에 그대로 ‘취향 저격’한 게 아닐까. 이탈리아와 한국의 똑같은 어원과 국수 면발의 식감이 그야말로 찰지게 어우러지는 대목이다. 

시선을 돌려 외식업에서 생면 파스타는 건면보다는 더 많은 공정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생면을 반죽하고 제면하는 시간과 인력이 고스란히 운영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그래서인지 생면 파스타를 주력으로 삼는 레스토랑은 대부분 영업시간이 짧다. 아예 저녁부터 장사를 시작하거나 점심과 저녁 사이 브레이크 시간을 필수로 확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심 장사를 위해 1명의 인건비를 부담하느니 점심 매출을 포기하고 예약받은 고객 인원수만큼 식재료를 준비해 하루에 전량 판매하는 전략으로 인건비와 버려지는 식재료비 절감을 꾀한다는 업계의 후문이다. 페코리노의 최병준 오너셰프도 “점심과 저녁 영업시간 사이 잠시 문을 닫고 직원들이 생면을 직접 만드는 시간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경험의 층위를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생면 파스타 레스토랑 형태도 오마카세, 바(Bar) 구조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점심에도 진심’인 이른바 MZ세대들의 세분화 된 취향이 생면 파스타라는 미식 카테고리의 부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박건하 실장

한가닥 한가닥, 장인 정신 깃든 생면 파스타

생면 파스타의 레시피는 어떻게 될까. 셰프마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업장에서 생면을 만들 때는 주로 이탈리아 00 밀가루를 사용한다. 이탈리아 밀가루는 제분의 정도에 따라 00, 0, 1, 2, 인테그랄레(integrale)인 5가지로 나누는데 00 밀가루가 연질밀(파스타와 피자 반죽용) 밀가루 등급 중 가장 곱게 제분한 것이다. 달걀 노른자를 넣어 면발이 노란 타야린은 본래 노른자만 넣는 것이 전통이지만 업장에서는 흰자를 첨가해 사용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ICIF에서 요리를 배운 한 셰프는 현지에서 타야린의 반죽의 배합을 밀가루 2kg, 전란은 600g, 노른자는 400g으로 배웠다고 귀띔했다. 더이탈리안클럽 김호윤 셰프는 “식재료비는 상승하지만 밀도 높은 파스타 면의 맛을 선호해 달걀 노른자와 밀가루, 물만으로 반죽을 한다”고 밝혔다.        

면발과 소스의 마리아주를 아시나요

이탈리아만큼 자국 음식에 대해 보수적인 나라도 없다. 이탈리아 북부의 토마토라구소스를 남부의 스파게티 건면에 버무려 냈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것. 마치 평양냉면에 쫄면 소스를 끼얹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형국이다. 복잡한 공식 앞에 주눅 들기 전, 음식칼럼니스트 권은중 씨는 한국인이 먹는 국수와 육수 궁합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면발이 가는 소면은 멸치육수 베이스인 잔치국수로 먹고 사골국이나 조개 육수처럼 진하고 묵직한 국물에는 면발이 두꺼운 칼국수를 매치한다.

파스타도 마찬가지. 바질페스토소스는 허브의 하늘하늘한 가벼운 맛이 특징이므로 가느다란 스파게티 건면 파스타와 매치한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라구소스는 생면 파스타인 탈리아텔레, 라자냐 면과 어울린다. 라구의 눅진한 소스가 통통하고 면적이 넓은 면에 비벼 먹어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사진=박건하 실장

셰프에게 생면 파스타란?

생면 파스타는 셰프에게 접근이 쉽지 않은 업종이다. 까다로운 제면 조리법, 경영 노하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자가제면의 수고로움은 고스란히 업장 주방의 추가적인 인력 배치와 비용으로 환산된다. 밀가루와 달걀 등 식재료 가격 상승, 인건비, 건면과 달리 유통기한이 짧은 생면 보관 등의 여러 고민은 생면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업주나 셰프들의 공통된 애로사항일 것이다. 

페코리노 최병준 셰프는 주방 직원들에게 도제식 제면 교육을 한다. 1~2년에 걸쳐 생면 파스타 만드는 법을 직접 가르쳐 전문가로 양성, 직원 오너십을 함양시킨다는 전략이다. 인력난에 대한 고민도 여느 매장처럼 시름이 깊지만 원칙은 확고하다. 그는 인력이 부족하면 고객을 받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영업시간을 늘린다고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갑작스레 직원 결원이 생기면 무리하게 영업하지 않고 예약을 아예 안 받는다”며 맛과 서비스를 기대하고 오는 고객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더 큰 금전적 손해는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더이탈리안클럽 김호윤 셰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밀가루 수급이 힘들다. 이탈리아 00 밀가루만 사용하는데 가격이 무서울 정도로 오르고 있다. 조만간 우리도 음식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제면할때는 생면 반죽의 수분 조절을 위해 주방의 실내 습도까지 까다롭게 신경 쓴다. 파스타 면을 뽑을 때도 공기 중에 분무 스프레이로 물을 분사해가며 공기 중 수분을 유지할 정도다. 손에 닿는 촉감만으로 반죽 수분을 감지할 수 있을 때까지 직원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입맛의 진화, 종착역은 이탈리아 본국의 맛

그간 우리가 먹어온 파스타는 엄밀히 따지면 미국식 파스타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미국으로 이민 간 이탈리아인은 500만명이 넘는데 이 중 80%가 남부 사람이었다. 피자와 파스타가 미대륙에 뿌리를 내렸고 이는 곧 일본에 소개되고 한국에까지 미식의 파스타 로드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식 이탈리안(Americanized Italian) 음식은 최근 유학을 다녀온 셰프나 해외 경험이 많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진짜 이탈리아 파스타 맛에 회귀하게 됐다. 흥건한 국물 같은 소스의 파스타나 미트볼 스파게티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탈리아 생면 파스타의 정통 맛과 조리법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것을 소비하는 고객 입맛이 고급화되고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세대인 것도 주목할 점.

이를 두고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씨는 최근 커피의 유행이 아메리카노 일변도에서 에스프레소로 이동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언급했다. 파스타를 오마카세 형태로 서빙하거나 셰프가 고객에게 직접 만든 생면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미식 경험을 확장하려는 고객의 욕망에 기초한다 볼 수 있다. 더구나 외식업계의 다양한 시도와 고객의 맛 탐험이 버무려져 생면 파스타의 트렌드가 본국인 이탈리아 정통의 맛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 미식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INTERVIEW | 노지민 셰프

“생면 파스타는 색·향·식감 등 팔색조 변화가 매력”

노지민 셰프가 파이브잇 컬리너리 아카데미에서 생면 파스타의 레시피와 반죽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사진=박건하
노지민 셰프가 파이브잇 컬리너리 아카데미에서 생면 파스타의 레시피와 반죽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건하 실장

노지민 셰프는 독일에서 이탈리아인 셰프에게 생면 반죽의 기초를 배웠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오스테리아 로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생면 파스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파이브잇 컬리너리 아카데미에서 생면 파스타의 레시피와 반죽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강의를 진행했다.

 

Q. 이탈리아 지역에 따라 면의 스타일은 달라지는가.

A. 현재 이탈리아 전역에서 생면을 먹지만 특히 북부에서 생면을 많이 소비하고, 남부는 건면을 주로 소비하는 추세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에밀리아로마냐의 중심도시 볼로냐는 달걀로 유명한 지역이다. 북부지역에서 재배되는 밀은 박력분 정도의 글루텐 함량을 가진 연질밀이다. 달걀과 연질밀을 사용한 생면 문화가 오래전부터 발달했다. 중남부는 달걀 생산이 적고 북부의 연질밀보다 더 단단한 경질밀이 많이 재배된다. 건조하고 덥기 때문에 상하기 쉬운 생면보다는 보관이 쉽고 오래가는 건면이 많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Q. 이탈리아 현지의 맛과 가까운 생면은 어떻게 만드나.

A. 글루텐 함량이 낮은 듀럼밀로 가공한 연질밀에 달걀 전란을 배합해서 반죽하는 것이 가장 클래식한 방법이다. 요리하는 사람마다 레시피는 다르겠지만 대표적인 레시피는 연질밀 100g에 달걀 전란 1개를 배합해서 반죽하는 것이다. 글루텐 함량이 낮은 연질밀로 단단한 식감의 면을 뽑기란 힘들다. 그래서 이탈리아 현지에서 처음 생면을 먹으면 한국에서 먹는 칼국수나 수제비보다 쫄깃하지 않다는 반응이 있다.

Q. 생면을 반죽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A. 수분조절이다. 생면 반죽의 수분함량이 달라지면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면 식감도 크게 달라진다. 반죽 수분이 과하면 조리 시 면이 빨리 익어 불게 되고, 반죽을 같은 힘으로 밀어도 면이 두꺼워져 원하는 식감을 실현할 수 없다. 반대로 수분이 부족하면 밀가루가 뭉치지 않아 제면하기 힘들다. 반죽 수분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생면 반죽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한 스펙의 밀가루, 달걀, 오일 등을 사용해 수분량의 오차범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Q. 파스타면과 소스의 조합도 궁금하다.

A. 파스타는 형태에 따라 크게 롱파스타와 숏파스타로 나뉜다. 스파게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알려진 롱파스타다. 실 또는 끈을 의미하는 면으로 대부분의 파스타 요리가 스파게티를 기준으로 만든다. 이탈리아 로마의 까르보나라가 대표적으로 스파게티면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스다. 파파르텔레와 피치도 대표적인 롱파스타다. 파파르텔레는 면적이 넓다 보니 소스가 많이 묻어날 수 있는 라구소스와 어울린다. 피치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쫄깃한 축에 속하며 우동면처럼 두꺼워 식감이 강하다. 소스 역시 색이 뚜렷한 해산물로 만든 소스의 종류와 조합이 좋다.

대표적인 숏파스타는 오레끼에떼와 가르가넬리가 있다. 오레끼에떼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귀라는 말이다. 사람의 귀 모양을 닮았고 식감이 좋아 토마토소스와 여러가지 페스토소스에 잘 어울린다. 가르가넬리는 뾰족한 원통형 기둥처럼 생긴 파스타로 볼로냐에서는 오리로 만든 라구소스와 조합해서 즐겨 먹는 파스타다.

Q. 건면과 생면의 차이점 그리고 생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두 면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생면과 달리 건면은 밀가루에 물을 배합해서 만든다. 레시피도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식감이 도드라지는 건면은 라이트한 소스보다는 무게감 있는 소스로 만든 파스타를, 부드러운 생면은 재료의 특성이 드러날 수 있는 신선하고 가벼운 요리에 사용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건면과 생면 중 무엇이 더 우월한지를 따지는 건 의미없다. 생면의 매력은 즉각적이고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시금치 퓌레, 과일즙, 오징어 먹물 등을 넣어 반죽에 색과 향을 달리 할 수 있다. 면의 형태를 바꾸면 식감도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종류에 따라 여러가지 조합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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