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세계를 잇다
세계와 세계를 잇다
  • 이서영 기자
  • 승인 2022.01.20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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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고방 한국 전통 채식 전문가 오경순
오경순 대표는 “사찰음식은 한국인에게 가장 최적화된 채식 식단”이라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그간 사찰에 숨겨져 있던 지혜로운 조리법이나 민초들의 음식도 다시 복원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사진=이경섭
오경순 대표는 “사찰음식은 한국인에게 가장 최적화된 채식 식단”이라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그간 사찰에 숨겨져 있던 지혜로운 조리법이나 민초들의 음식도 다시 복원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사진=이경섭

 

산사(山寺)의 음식이 속세로 나왔다. 한국 전통 채식 전문점 두수고방을 통해서다. 두수고방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는 오경순 전 전주국제 한식조리학교 교수. 한식 전문가이자 사찰음식의 대가로 알려진 정관스님의 오래된 제자다.

교수직 내려놓고 스승 뜻 따라 상경

재가자(在家者). 오경순 선생이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재가자란 불교에서 쓰이는 말로 ‘출가하지 않은 신자’를 가리킨다. 그는 재가자로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찰음식을 공부해 왔다. 특히 정관스님을 수행하기 시작하면서는 사찰음식의 가치와 역사, 철학까지 깊게 탐구했다. 지난 2019년에는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운영하는 사찰음식전문 교육관 ‘향적세계’에서 사찰음식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1기로 수료하기도 했다.

오 선생이 두수고방을 맡게 된 건 스승인 정관스님의 권유가 계기였다. 전주국제한식조리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던 그는 스승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두수고방으로 ‘출가했다’.

“불가에는 출가자와 재가자,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재가자는 불가와 속세를 잇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사찰음식을 배우고 연구해 왔다. 사찰음식의 핵심 가치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그 정신이 좋았고 이것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정관스님으로부터 두수고방을 맡으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았던 건 더 많은 이들에게 제대로 된 사찰음식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찰음식은 가장 민초적인 음식”

오 선생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패션 기획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패션지 기자를 거쳐 30대 때는 단체급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20년 가까이 단체급식 사업을 하며 식품과 외식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대학교에 다시 입학해 식품조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직접 한식 조리를 배우고 싶어 사단법인 전통음식연구소 평생교육원을 찾았다. 교육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6개 정규과정(전통음식·궁중음식·전통민속주·한국의 혼례음식·차와 음청류·떡/한과)을 수료하고 자격증까지 취득, 궁극에는 최고지도자 과정을 이수하면서 한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았다. 사찰음식을 다시 보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나는 열성적인 불교 신자는 아니었다. 그저 어릴 때부터 절에 가면 목탁소리와 풍경소리가 좋고 향 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졌을 뿐이다. 다른 종교도 접해 봤지만 마치 시골 고향같은 사찰의 정서가 나에게 맞는 것 같았다. 사찰음식을 깊이 탐구하게 된 건 한식을 배우고 나서다. 그 많은 한식 가운데서도 사찰음식은 가장 민초적인 음식이라고 생각됐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음식. 그 점에 강하게 끌렸던 것 같다.”

오 선생은 우리 민족이 ‘나물 민족’이라고 불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선조들 가운데 육고기나 물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었던 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나머지 백성들은 산과 들에서 자란 푸성귀로 밥상을 차렸다”며 “사찰음식은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전통 식생활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다”고 말했다. 

‘바른 조리와 바른 섭취’의 매력에 빠지다

오 선생이 꼽는 사찰음식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그를 사로잡은 철학은 ‘유연함’. 식재료 하나도 줄기에서 열매, 뿌리까지 온전히, 버리는 것 없이 섭취한다는 게 좋았단다. 그는 이를 ‘바른 섭취’라고 불렀다. 

“모든 식재료에는 끝과 끝에 에너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요리를 할 때 식재료의 많은 부위를 버린다. 사찰음식은 식재료를 완전히 사용함으로써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식재료의 에너지를 온전히 섭취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그것이 유연하면서도 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불가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수련으로 본다. 그래서 사찰의 음식에는 철학과 사상이 깃들어 있다. 

오 선생은 “음식에는 만드는 사람의 에너지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음식을 만들 때 마음과 정신이 깨끗하고 가지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음식의 완성된 모양보다 조리자의 마음가짐과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는 점도 사찰음식의 매력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사찰음식을 비즈니스 콘텐츠로 풀다

두수고방은 처음 오픈했을 땐 문화행사나 강연회 등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정관스님이 두수고방의 고문으로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문객들로부터 스님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에 오 선생은 정갈한 사찰음식 반상 메뉴인 ‘오늘의 공양’을 만들어 하루 10명에게만 한정 판매했다. 이후 판매 정원을 지속적으로 늘려 현재 두수고방은 하루 30명까지 오늘의 공양을 제공하고 있다. 

“두수고방에는 약식 주방만 설치돼 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기가 어렵다. 또 정관스님이 만든 장 등 프리미엄 식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식재료도 한정돼 있어서 제한을 둘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수고방에서 사찰음식을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의 수요는 계속 늘어났고 이런 이유로 점차 공급을 더 늘리게 됐다.”

현재 두수고방은 한국 전통 채식을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서 레스토랑의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 아마도 두수고방은 사찰음식을 F&B 플랫폼 비즈니스로 풀어낸 첫번째 공간일 것이다.

선물세트부터 밀키트까지 제작

사찰음식을 하나의 비즈니스 콘텐츠로 정의한 이후 오 선생의 행보는 과감해졌다. 두수고방은 최근 안동에 있는 전통주 업체인 ‘진맥소주’와 협업해 두수고방만의 개성이 담긴 증류주를 만들었다. 아직 판매 개시 전이지만 먼저 시음해 본 주당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앞서 오 선생은 경남 거창에 위치한 국수 생산업체인 ‘거창한 국수’와도 컬래버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두수고방의 첫번째 밀키트가 탄생했다. 이름하여 ‘두수고방 가죽 국수’. 참죽나무의 여린잎인 가죽을 갈아만든 국수와 두수고방의 국간장과 채수팩 등으로 구성된 키트다. 

이외에도 그는 두수고방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는 수제 약과와 쌀강정 선물세트를 만들어 판매했고 앞서 설에는 수제 부각 세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매장에서는 수제 조청과 식혜, 채식 김치, 나물 반찬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오 선생은 앞으로 온라인에서도 두수고방의 상품을 판매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불가와 속세 잇는 가이드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자 할 때 그 세계를 안내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외국 여행을 갔을 때 현지 가이드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래야 우리가 알고자 하는 어떤 것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 오경순 선생은 그런 점에서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 사찰음식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그것의 가치를 말해 줄 수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출가자(出家子)가 아닌 재가자라는 사실은 오히려 다행이다. 사찰음식을 수련의 관점이 아닌 학문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탐구할 수 있으니까. 

오 선생은 “사찰에는 유연한 조리법들이 많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가 1500년이 넘었으니 얼마나 지혜로운 조리법들이 많겠나. 며칠 전에는 정관스님과 함께 한 사찰에 다녀왔는데 아주 놀라운 음식을 맛봤다. 튀기지 않은 김부각이었다. 이처럼 사찰에도 각 사찰마다 개성있게 이어져 내려오는 ‘내림 음식’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 같은 내림 음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아쉬워 했다. 그러면서 “사찰음식은 한국인에게 가장 최적화된 채식 식단”이라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그간 사찰에 숨겨져 있던 지혜로운 조리법이나 민초들의 음식도 다시 복원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말한 튀기지 않은 김부각을 맛봤다.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바삭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사찰의 공양간은 보물창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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