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식품이 건강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음식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소개하는 도서나 자료 등의 필요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 요리를 소개하는 책은 많아도 우리나라 음식의 탄생과 역사에 대해 과학적으로 소개하는 책은 없다.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요리책이나 한국음식에 대한 소개서를 보면 궁중음식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궁중에서 왕이 즐겨 먹었던 고급음식이라는 이야기다. 가끔 일부 고급식당에서 비싼 요리를 내놓을 때 궁중음식이라 하는 데 그 근거로 보통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한문으로 기록된 문헌에 나오면 그 음식을 쉽게 궁중음식이라 한다. 두 번째로 옛날 궁궐의 수랏간에서 근무했던 요리사(나인이나 장금 등)로부터 직접 배운 것이기 때문에 그 음식을 궁중음식이라 이야기한다. 일견 그 근거가 대단히 타당성이 있고 그 경우 궁중음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를 무조건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리나라 음식에 관한 기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성들이 한자로 쓴 책이 있고 여성들이 한글로 쓴 책이 있다.
즉 6세기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원나라의 거가필용(居家必用), 우리나라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등 대부분 남성이 한자로 쓴 책이 있다.
이어 안동장씨, 빙허각이씨, 방신영 등 여성들이 한글로 쓴 음식디미방(규곤시의방), 규합총서(閨閤叢書), 시의전서(是議全書),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등이 있다.
음식에 관해 전문가라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쉽게 오류를 범한다.
이렇게 한자로 쓴 고문헌에 음식이름이 나오면 대부분 궁궐에서 임금이 즐겨 먹었던 궁중요리라고 주장하게 된다. 누가 이렇게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쓴 책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직접 만들어 보고 먹어본 경험에 의해 쓴 책들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남성들이 한자로 쓴 책은 필자의 직접적인 요리 경험에 의해 쓴 책이 아니라 처음에는 주로 중국 서적 등 이전 한자 서적에 근거해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고쳐 쓴 책이 대부분이다. 그 나중에 나온 책들도 남성들이 처음 나온 한자책을 근거로 개정증보해 낸 책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에 음식이 나온다고 해서 궁중음식이라 주장하는 것은 대단한 잘못이다. 오히려 이런 음식은 제민요술에서 나오는 것 같이 중국음식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전통을 이어온 나라이기 때문에 유교의 형식대로 제사를 지내고 제사의 형식에 맞게 음식을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이러한 책에 음식을 기록할 필요성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책에 나오는 음식은 아낙네가 만드는 음식이 아니며 임금이 즐겨 먹는 궁중음식도 아니다. 오히려 제례음식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사실 대부분 제사나 예식 때 만들었던 차림음식은 우리 음식에 기원을 두지 않아서 고추도 쓰지 않아 색깔도 하얗고 그 때문인지 우리 입맛에는 그리 맛이 없다. 궁중음식으로 대표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 신선로(熱口子湯)이다.
우리 음식의 조리 원리도 따르지 않았고 신선로도 고유의 용기가 아니다. 신선로는 중국을 비롯해 서남·동남아시아에도 많다. 마찬가지로 구절판도 의례음식이다. 어려운 한자로 쓴 책에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 나오면 궁중음식이고 한글로 쓴 책에 익숙한 음식이 나오면 일반 백성들의 음식이라는 이분법의 논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오히려 임금들은 여성들이 쓴 책에 나오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을 좋아했다. 조선시대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보면 왕들은 고추장 등 우리 발효식품을 즐겨 먹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 궁중에서 일했던 분들이 만들었던 음식을 전승해 만들었다 해서 그 음식이 궁중음식이라는 논리도 매우 위험하다. 수랏간에서 그 많은 나인들이 필요했던 것은 제사나 행차, 의례형식에 필요한 많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궁중에서 요리사라고 일했던 분이 전수한 음식이 궁중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음식점에서 이야기하는 궁중음식에 대해 신중하게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