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
풍요 속의 빈곤
  • 김철원 한국방송대 관광학과 교수, 외식테라피연구소장
  • 승인 2023.06.28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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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옛날도 아니고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을 겪고 살았다. 하루 세끼를 풍족하게만 먹고 살아도 소원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새 시대가 변해 먹을 게 차고도 넘치는 세상이 됐다. 마트에 가보면 진열대마다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모든 식품이 즐비하다. 굳이 마트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모바일로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음식을 구할 수 있다.

마트뿐만이 아니다. 식당은 또 어떤가.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식당으로 즐비하다. 커피점은 어떻고 빵집은 어떻고 또 치킨집은 어떤가. 개인이 혼자서 꾸려가는 식당뿐만 아니라 하루가 멀게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프랜차이즈 점포들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거기에 SNS를 연일 뜨겁게 달구는 신개념의 ‘핫플’들은 얼마나 다양하고 자주 바뀌는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먹을 게 차고도 넘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뭐 먹을 만한 게 별로 없네.’

음식점을 창업하기 위해 이리저리 점포 자리를 물색하러 다니면서 제일 염두에 두는 건 아무래도 ‘유동인구’일 것이다. 사무실로 가득한 시내 중심가를 다녀보면 점심시간과 퇴근 무렵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에 사로잡힌다. 저들 중에 하루에 아무리 못해도 백 명 이상은 내 가게에 오겠지 하는 기대감이 솟는다. 수천 세대가 모여 산다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하루에 수천 명이 오가는 상황을 듣게 된다. 아파트 단지의 상가에 가게를 내면 그 많은 주민 중에서 최소한 백 명 이상은 이용하겠지 하는 기대감이 샘솟는다. 수만 명 이상이 다니는 대학가 앞에 가게를 내면 하루에 몇 명이나 내 가게를 찾을까 계산해 본다. 아무리 못해도 백 명 이상은 오겠지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렇게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우리 손님은 대체 어디 있나.’

먹을 게 지천으로 많아도 먹을 만한 게 없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자기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을 잘 찾아 먹는 사람도 있다. 유동인구가 그렇게 많아도 손님이 없다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인적도 없는 외진 곳에 개업하고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게가 있다. 그런 사람과 그런 가게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본인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가게 스스로가 무엇을 잘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지만, 오늘날 많은 이가 먹고 사는 삶에도 가장 근본이 되는 말이다. 유사 이래 이렇게 음식이 풍성한 시절임에도 먹을 만한 게 없다는 이들은 음식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자신의 입맛이 변했거나, 배가 부르거나, 건강이 좋지 않거나 아니면 맛난 음식이 뭔지 모르거나, 그 이유는 참으로 많을 것이다. 인간에게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그저 ‘아무거나 먹지’하는 하찮은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입맛은커녕 소중한 건강을 먼저 잃을 수도 있다. 자신이 무엇을 먹으면 맛있는지, 언제 먹으면 맛있는지, 누구와 먹으면 맛있는지, 얼마만큼 먹으면 맛있는지 등과 같이 구체적인 상황에 최적화된 기준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인생 식단을 만들고 관리한다면 맛있는 인생을 구가할 수 있다.

많은 유동인구 속에서도 손님 만나기 어려운 고독한 음식점이라면 애꿎은 손님 탓을 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최고의 맛을 낼 줄 아는지, 최고의 맛을 낼 줄 아는 직원을 고용할 수 있는지,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식재료를 확보할 줄 아는지,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최고의 맛을 위한 매장 분위기를 내줄 수 있는지 등과 같이 손님들이 최고의 맛을 찾아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그 많은 유동인구의 풍요를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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