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람, 관계 그리고 식사
[오피니언]사람, 관계 그리고 식사
  • 김철원 한국방송대 관광학과 교수, 외식테라피연구소장
  • 승인 2023.10.24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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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의 대표적인 명언,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가 여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대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한 집에 삼대가 모여 사는 일이 일상이었다. 짧은 기간에 고도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다양한 변화를 맞았다. 그중에서 핵가족화 현상은 과거 3대 이상 모여 살던 구조에서 2대가 함께 사는 구조로, 더 나아가 이제는 1인 가구만 사는 구조로까지 분열되는 가족공동체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공동체의 변화는 ‘밥상’ 문화에서부터 실감할 수 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집은 삼대가 함께 살아서 끼니때마다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밥상머리 교육은 지극히 당연한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이었다. 함께 식사하면서 자연스레 정보공유도 이뤄지고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협력과 배려 등 공동체 생활에서 필요한 덕목을 체득하게 됐다. 그러나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오늘날에는 ‘편리함’으로 포장된 개인주의가 밥상까지 바꿔놓고 있다. 즉석식품에서 포장·배달음식으로까지 진화된 ‘플라스틱 밥상’ 문화의 등장으로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한 핵심적인 기능이 소실되는 시대를 경험하는 셈이다.

지나친 개인주의는 사회적 상호의존성을 무시하고 공동체를 위한 협력과 희생을 회피하며 나아가 사회적 질서를 해치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는 사회 범죄의 양상을 보면 그 심각성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데 그 원인으로 인간의 ‘사회성 상실’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발생하는 사회 폭력 범죄의 원인이 불안정한 사회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 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해답을 인류의 진화론에서 찾아보는 것도 근원적 관점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공통되게 나타난 현상은 바로 협력과 이타심 그리고 친화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류는 사냥한 후에 한데 모여 식사를 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같은 편이라는 인식을 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것은 오늘날의 인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마음이 맞지 않거나 적대적인 사람과는 같이 밥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밥을 함께 먹는 것으로 상대와의 친분을 구분하기도 한다. 인류는 집단행동으로 설명되는 사회관계에서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을 이어왔는데 오늘날에 와서 사회와의 단절과 고립 현상은 결국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알게 된 자연도태적 행위인 셈이다.

‘혼밥’으로 불리는 고립된 식사행위를 단순히 ‘편의’를 위한 문화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인류의 ‘식사’에 대한 공동체적 협력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심각한 시행착오다.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하는 한자에서 유래한 것처럼 사회생활에서의 인간 활동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며 그 관계 지속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친화(親和) 욕구’를 갖고 있다.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선택한 진화론적 행동이다. 그렇지만 조건 없는 협력관계는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자신만의 고유한 방어막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그 방어막을 해제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은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서로가 개인적인 공간을 개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사는 인류 진화에서 나타난 도구, 불, 언어 등의 사용보다도 더욱 근원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원천이었기에 오늘날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를 바로 잡을 해법도 ‘함께하는 식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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